제      목: (눅6b) 다른 뺨
이      름: 임형주
작성일자: 2017.02.14 - 15:51
사람이 그 비교적인 우위나 성취감에서 벗어나서 살아갈 수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회의적인것 같습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미를 비슷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 보입니다. 어떤 사람이 누가 뺨을 때리면 다른 뺨도 돌려대라 하는 것과 속옷과 겉옷의 비유를 로마 치하에 있어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해석하신 경우를 보았습니다. 그러면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살아남는 것이 우리의 말씀을 이해하는 방법이어야 합니까?" 또 반대로 어떤 분은 살아남으려는 노력이 신앙안에서 비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죽으려고 노력하는 분을 보았습니다. 한참 동안 저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라는 말도 다른 칭찬이나 사랑에 대한 말도 다른 뺨도 갖다 대라 말과 함께 있습니다. 돌아보면 이 말씀들을 대했을 때 처음에는 어떤 신앙안에서 두근거림으로 다가 올때도 있고, 결심이나 각오처럼 지나갔을 때도 있었고, 많은 실패나 후회 속에서 재결심하는 자리들도 지나왔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사람이 자신의 결심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나 수준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내가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말씀하시는 것임을 깨닫는 자리가 있습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하나님이 인자하신 분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나도 그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전히 사람에게는,다른 사람에게 뺨을 맞는 일이 설령 내게 잘못이 있더라도 나의 선택으로 다른 뺨을 돌려 댈 방법이 없습니다. 뺨을 맞는 일이란 있을 수 없는 제가 가진 기본적인 자격과 권리나 수준같은 것이 있다고 믿고 있는거죠. 사람으로서 뺨을 맞는 일이 또 다른 편을 돌려대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을 경지란 우리의 생각속에는 없는거죠.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이 받은 구원은 비교되지 않는 큰 것입니다. 그래서 불가능해 보이는 그것들이 가능해야하는 자리에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온전한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의 자리에 가는 것처럼 그 자리에 있는 우리는 아버지의 자비로우심과 같이 자비하게 되어 있는 것이고, 헤아려야 하고, 주는 일이 되어야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다는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신앙의 모양은 많이 달라집니다.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회복은 사람에게는 많은 것들의 시작입니다. 내가 익숙해 있는 것들을 다시 보게 하시고 내가 가진 이유나 자격이나 에서 돌아서서 하나님 안에서 하시는 일을 기대하는 일, 그래서 기도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다른 뺨을 돌려대고 하는 일은 무엇을 하느냐의 행위나 어떻게 하는가의 방법에 대한 말씀이 아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