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눅8c) 여인과 혈루
이      름: 임형주
작성일자: 2017.02.17 - 23:54
회당장 야이로의 죽어가는 딸을 치유하러 가실 때에 예수님의 옷을 만진 혈루증 앓는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어떤 것이 간절히 필요하여서 심령이 아주 가난해질 때가 있습니다. 자존심도 중요하지 않고 대가가 무엇이든 간에 시도를 해야하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자식을 위해 그런 생각이 드는 때들이 있습니다.
혈루증을 가진 여인이 그 간절함을 가지고 군중들 사이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치료받았다는 기쁨보다 놀라움이나 두려움이 앞섰을 것 같습니다. 혈루에 대해서 가진 당시의 이스라엘 문화가 그렇기도 하고 허락없이 메시아로 소문이 난 분의 옷자락을 만졌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누가 손을대었는가?"라고 물으시는 예수님은 본문에서 그 여인을 야단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는 말씀과 평안히 가라 라는 말씀중에 그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생각 그래서 얼마나 가난한 존재인가를 인식하는 것도 포함하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도 필요하고 그 안에 예수님이 계셔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풍경안에 그 가난하고 간절한 혈루의 여인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도 귀신들린 딸을 위해서 소리치던 이방여인, 가나안 여인의 외침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가난해지면 사람이 스스로 붙들 고 있을 수 있는 것이 아주 작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존심이나 다른 앞뒤 상황을 따지는 일은 이차적인 일입니다. "개들도 부스러기는 먹지 않습니까? "라고 예수님이 하신 모욕적인 말들에 대답하는 여인의 태도가 그렇습니다. 딸이 치유 받는 것을 위해서 자신이 모욕을 당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일은 아주 먼 일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크심을 인정하고 약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는 일, 크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의 하실 일을 기대하는 가난한 심령들에게 구원을 허락하시는 것은 여전히 놀랍고 기쁜 소식입니다.
삶 중에 많은 사건들이 지나가지만 그 안에서 간절히 하나님께 아뢰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어떠하심 보다 내가 신앙인으로 가진 신념이 더 중요하고 물에 빠져 죽는 한이 있어도 경박스럽게 지푸라기를 붙들고 살려달라고 소리지르지는 않는 선비와 같은 말도 안되는 자존심은 어떻게 해결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허물들을 내려놓고 나를 가리고 있는 많은 껍질들을 벗고 모든 일들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언뜻언뜻 보이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기 위해서 손을 내미는 그 혈루여인의 가난함이 내 삶의 모든 순간들 가운데도 놓쳐지지 않아서 내게 있는 욕되고 악한 죄의 속성들이 하나씩 조금씩 회복되어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