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눅18b)그 관리와 베드로와 나
이      름: 임형주
작성일자: 2017.03.21 - 13:54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질적인 것이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이해되기란 어려운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내 집을 장만할 때도, 물건을 구입할 때도, 직업을 갖게 될 때도, 작은 기구들을 선택할 때도 물질적인 것이 대개는 가장 중요한 판단의 기준 입니다. 많은 경우에 "자기의 분수에 맞게" 라는 것도 어떤 미덕이나 이성적인 기준으로서가 아니라 "체념"이나 "감수"와 같은 의미로 이해됩니다. 사람이 물질이라는 것이 가져다주는 편리함이나 사회적인 지위에 익숙하면 그것이 삶의 변할 수 없는 배경이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것이 베드로에게 "저렇게 괜찮은 부자가 갈 수 없다면 그러면 누가  갈 수 있겠습니까?" 라는 질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부유한 관리는 어려서부터 원칙들을 잘 지키며 살았던 좋은 사람이기도 해서 베드로에게는 상당히 큰 도전인 것입니다.

29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항상 사람의 문제는 말씀을 "교훈"이나 "각오"나 "결심"으로 이해해서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리는 일"로 이 말씀을 이해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어떤 이는 그래서 이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이것을 잘못된 가르침으로 악용하기도 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 나라를 위함"이 초점이고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리는 일은" 그것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것, 결과들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면 우리 가운데 있는 버려야할 것들에 대한 시각이 생깁니다. 그러면 현시대에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가 어떤 의미인지에 초점을 맞추어서 보아야 합니다.
결국 부자의 근심은 "하나님 나라"가 그의 삶에 직접 관련되어야할 것으로 존재해야하는 것이어서 고민인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자신이 소유한 재산을 비교하는 자리에 가 있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이미 그에게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이세대에도 그것은 가능한 일 같지 않습니다. "부자"라는 것이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게 아니라서 소유가 넉넉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거의 누구나 예외없이 그 관리와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나라"가 가장 중요한 삶의 내용으로 묵상되어야 하는 것이 오늘 어려서부터 좋은 원칙들을 잘 지키며 살아왔으나 재산이 많음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요청에 응할 수 없었던 그 관리를 보고 베드로와 받는 도전이고, 가진 것들이 충분해서 가진것들을 내려놓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우리 세대가 받는 도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