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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빛 목양실read: 890  
Subject   존경받는 아브라함
존경받는 아브라함                                            
창21:22~34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는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고 이삭이 태어난 이후에 아브라함은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22절=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32절을 보면 여기에 나타난 아비멜렉과 군대장관 비골은 블레셋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아브라함보다 권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보다 훨씬 큰 사람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큰 사람으로서 작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것은 아비멜렉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브라함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인격이 훌륭하거나 권력이 있다거나 군사력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아비멜렉이 볼 때 아브라함이 하는 일마다 항상 하나님이 개입한다는 그 사실 하나 때문에 이렇게 아브라함게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은 그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든 사람들, 특히 불신자들이 그 증거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23절=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도대체 아브라함이 이방인이고 나그네인데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남의 나라에 와서 사는데 그 나라 주인이 와서 ‘내가 네게 잘 해준 것처럼 너도 내게 잘 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특권입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과 동맹을 맺지 않고 살기에는 뭔가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나라 땅에 와서 사는 별 볼 일 없는 한 사람에게 그는 장군을 대동하고 찾아가서 자신과 동맹을 맺자고 제안했던 것입니다.

:24~26=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아비멜렉이 가로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이야 들었노라.”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 온 이유 중 하나는 어떤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자기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약탈해 갔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이 두려워 아브라함에게 찾아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24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유연성을 발견합니다. 

아브라함은 이방인이었던 아비멜렉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는 배타적이거나 유아독존적인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사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타협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신앙의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되고 자기만 구원 받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도록 행동하는 비인격적인 사람으로 비춰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상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만나기를 기피하던 창녀와 죄인들과 세리들, 귀신 들린 자, 저주받은 자라고 생각되던 문둥병자들을 가까이 만나주셨고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을 넓히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갖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25절에서 아비멜렉의 종들이 자신의 우물을 늑탈한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이 조약을 맺자고 제안하자 이 이야기를 툭 던진 것입니다.
분위기가 얼마나 어색해졌겠습니까?
당황한 아비멜렉은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오리발을 내밀었습니다.

27절=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아브라함은 우물 사건도 있었고 더구나 아비멜렉이 직접 찾아왔던 상황이기에 빼앗겼던 우물을 다시 돌려달라고 할 수도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우물 이야기를하고 나서 오히려 양과 소를 취하여 베푸는 모습을 봅니다.

작은 것을 내어 주고 큰 것을 얻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런 뛰어난 처세술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현재를 생각하기보다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28~31=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뇨 아브라함이 가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양과 소를 주면서 암양 새끼 일곱을 따로 구분했습니다.
아비멜렉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우물을 내게 팔아라. 이것들로 이 우물을 내게 판 증거로 삼으라.’고 자신의 의도를 밝힙니다.

실은 그 우물은 원래 아브라함의 우물이었고 억울하게 빼앗겼던 우물이었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냥 돌려달라고 이야기 하지 않고 그 우물을 팔라고 부탁합니다.
암양 새끼 일곱마리는 일종의 영수증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비멜렉이 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지혜로운 행동에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하고자 하는 대로 계약을 맺습니다.
이 우물이 바로 ‘브엘세바’였습니다. 브엘세바는 ‘맹세의 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32절=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돌아갔고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머물렀더라.”
아비멜렉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고 블레셋 족속으로 돌아갔지만 아브라함은 그곳에 에셀 나무를 심었습니다.
이것은 이 언약의 증거이자 연합하여 살자는 뜻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방인까지 받아들이는 신앙의 융통성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신앙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족속, 모든 열방, 모든 나라로 복음을 들고 나가야합니다.
대상을 제한하지 말고 민족을 제한하지 말고 가야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에셀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여호와는 영원하시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질문:1) 당신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신자들입니까?  불신자들입니까? 

질문:2) 당신은 불신자들과 어떤 계약 관계를 해 보았습니까?

질문:3) 당신의 행동과 말이 주의 자녀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질문:4)  당신은 불신자들과 어떤 계약 관계를 해 보았습니까?
        어떤 결과가 있었습니까?   당신은 어떤 태도로 계약을 이행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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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2.02 -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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