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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빛 목양실read: 1157  
Subject   아브라함의 순종
아브라함의 순종                                        
창22:1~8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순종에 대한 말씀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100세에 얻은 소중한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 입니다.  

본문:1-2절=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자식을 죽여서 번제물로 바치는 것을 좋아하거나 기뻐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엄청난 명령을 받고 나서도 담담하게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아브라함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지시한 곳을 향해 떠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침착하게 순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민하거나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으로 갑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믿음은 무슨 명령을 내리든지, 감당할 수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순종하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믿음은 정신력이 아닙니다.
성숙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믿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희생의 대가를 치루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 하고 따라가겠다는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

4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드디어 아브라함은 삼일 길을 지나서 하나님이 지시한 산을 멀리서 보았습니다.
삼일이란 시간동안 아브라함은 이삭의 죽음을 묵상했을 것입니다.  
이삭과 같이 가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자기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만 하는 꿈이기를 바라는 현실이 눈 앞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백세에 낳은 자기 아들, 독자 이삭을 자기 생명처럼 좋아했고 사랑했습니다.
정말 자기 보다 더 사랑했던 자기 아들을 죽여야 한다는 순종 앞에선 아브라함에게 이 삼일이라는 시간은 죽기보다 더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목적지에 가까이 갈수록 더 괴로웠을 것입니다.

5절=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목적지에 도착해 나귀와 사환들은 거기에 머물렀고 이삭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한 산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세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지만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내 생각이나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내 이성적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게 보여도, 가능한 것을 바라보고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은 ‘이삭이 죽어도 살리신다.’ 는 믿음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6절=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아브라함은 함께 따라온 사환들과 나귀를 기다리게 하고 이삭과 함께 약속의 장소로 올라갑니다.
번제에 사용될 나무를 아들 어깨에 지워 줍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것과 같습니다.  
이삭은 자기가 번제로 드려질 때 그 번제 할 나무를 지고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앞에서 철저하게 순종하신 것처럼 이삭도 아버지 아브라함 앞에서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이삭은 자기가 져야할 나무를 어깨에 메고 하나님이 약속한 장소로 갑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에는 상상할 수 없는 믿음과 눈물 나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불을 가지고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이때의 아브라함의 마음은 마치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준 하나님의 마음과 같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여야만 했습니다.
이 고통스러운 아버지의 마음을 지금 아브라함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삼일동안 고통을 겪었지만 하나님은 몇 천년동안 우리를 향해 고통스러웠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받아들였지만 아들을 내어준 하나님의 고통하는 마음은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조건 없이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그 사랑과 그 은혜를 생각하고 감격해야 합니다.

:7절=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드디어 이삭이 입을 엽니다.
이삭은 이미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아브라함의 대답에는 너무나 기가 막힌 깊은 고통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곧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어야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이삭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8절=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아브라함은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준비하시리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순종을 행하는 일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지만 역사하시고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이미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 해 주셨습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은 사람이 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시고 부활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생명의 주인 되신 주님 앞에서 순종하는 믿음생활 하시기를 바라며, 이 시간도 하나님의 부활의 생명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질문:1) 당신은 어떤 문제를 결정하지 못한 채 귀로에 처한 적이 있습니까?
        그럴 때 어떻게 결정합니까?

질문:2)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을 해본 경험이 있습니까?
        어떻게 감당했습니까?    그것이 정말 불가능한 것이었습니까?

질문:3) 아브라함의 순종과 이삭의 순종의 다른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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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2.02 -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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