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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빛 목양실read: 890  
Subject   약속의 자녀와 육신의 자녀
약속의 자녀와 육신의 자녀
창21:8~21
                                                                          
오늘 본문은 약속의 자녀와 육신의 자녀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 2~3세 때에 젖을 땐다고 합니다(참고:창21:5-8).
우리들은 첫돌 잔치를 하는데 그들은 젖을 땐대 큰 잔치를 베푸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삭도 역시 두 세살 되었을 때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삭이 아무 사고 없이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자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것도 기쁨이지만, 잘 자라는 것도 부모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세상에서 여러 환란과 고난을 겪다가도 집에 돌아와 잠자는 아이를 보는 순간 온갖 시름이 모두 사라집니다.

“품안에 자식” 이란 말이 있습니다.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하면 부모의 품을 떠나 돌아오지 않습니다.
과연 누가 우리들의 자녀를 끝까지 책임지고 키울 수 있습니까?
부모가 키우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자녀를 하나님이 키우시도록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임하도록 기도하고 축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팔십육세 때 이스마엘을 낳았으며 이삭은 1백세에 낳았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2~3살 먹을 때까지의 기간을 포함하면 이 때의 이스마엘은 사춘기로 예민한 나이인 16~17세였습니다.

바로 그때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희롱하고 핍박했습니다(9-10절).
이삭이 열 네살 위인 이복 형에게 학대를 받는 것을 보자 사라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즉시 아브라함에게 달려가 따졌습니다.
당장 이 아이와 여자를 내어 쫓으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건을 굉장히 중요한 사건으로 여겼습니다.(갈4:22-26)
사도 바울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한 것이 단순히 이복형이 이복동생을 희롱한 사건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했던 사건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해석은 계속되는 갈라디아서의 구절에 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갈4:28-31).

저는 우리 모두가 축복받은 약속의 자녀인줄 믿습니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이삭으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육체의 자녀, 육체의 옛사람이 계속 있으면 그것들이 우리영의 생각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갈등하며 육체의 속성에 결국 지고 마는 것입니다(참고: 갈5:16-18).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소욕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약속의 자녀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10절=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그렇습니다.
육신의 일은 영의 기업을 계승하지 못합니다(참고: 롬8:5)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육신의 생각에 잡힌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정말로 예수를 잘 믿고 싶다면 여러분 안에 있는 육신의 생각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약속의 자녀로 영의 기업을 계승하는 자유하는 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내의 말을 듣고 그 아들의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2절=“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이스마엘의 출생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생각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갈등과 고민과 불화가 생겨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도 옛사람과의 둘 사이에서 갈등을 겪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안에 있는 옛 자아를 살려두지 말고 내어 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고민은 무척 깊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깊이 고민하자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아브라함의 마음을 위로하셨습니다.

13절=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하나님을 만납니다.
비록 아브라함이 믿음이 약해서 실수한 아들이지만 이스마엘에게 복을 내려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삭에게 준 복이나 이스마엘에게 준 축복이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낳은 아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14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새벽에 아브라함이 일어나서 홀로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집을 떠나도록 짐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물과 떡을 장만해서 자기 부인과 아들에게 이것을 메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살을 에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이 불쌍한 여인과 그 아들을 내어 보냈습니다.

본문15-16절=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에 두고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하갈은 떨기나무 그늘에 자식을 앉히고 화살을 쏴서 도달할만한 거리쯤 떨어진 곳으로 가서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그리고 목이 말라 죽어가는 아들 이스마엘을 쳐다보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17~18절=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내가 네 기도소리를 다 들었다. 너의 통곡과 저 아이의 기도를 들었다. 이제 일어나 아이의 손을 붙들어라. 내가 이 아이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다.”

본문19절=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그 당시에는 물이 없으면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고통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생명을 위한 샘물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아이와 함께 계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결코 버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이 이스마엘에게 약속하신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십니다.

본문20~21절=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오늘 본문에서 보는 이 싸움은 영적인 것이지 육적인 싸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삭을 약속의 자녀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먼 훗날 이삭의 후예 가운데 메시아가 태어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죽음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이 생명이 바로 약속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을 이삭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새빛 여러분!
옛사람을 죽이십시오. 그리고 영원한 약속의 자녀로서 새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질문:1)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 원수되었던 우리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약속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질문:2) 당신은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된 것을 믿습니까?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  구원과 영생입니다. 하늘 나라의 기업을 약속하셨습니다.

질문:3) 육신에 속한 나를 끊어버려야 합니다.
무엇을 끊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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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2.02 -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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